실천과 인식
2008/02/0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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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kfas Yoga: Alpha male in the Handstand Pose
the other Martin Taylor
사람은 실천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리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라 합니다. 이처럼 "실천 -> 인식 -> 재실천 -> 재인식"의 과정이 반복되어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 갑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쓸 수 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제가 징역 초년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생각의 녹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생각을 녹쓸지 않게 간수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녹을 닦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읍니다. 요컨대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징역 초년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생각의 녹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생각을 녹쓸지 않게 간수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녹을 닦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읍니다. 요컨대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신영복의 엽서' 中 대전교도소 1984년 3월 1일 -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 실현된 것 만큼의 사상만이 자기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것이 아닙니다.
자기것이 아닌 것을 자기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자기것이 아닌 것을 자기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 '신영복의 엽서' 中 대전교도소 1984년 8월 8일 -
매번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실천하기는 왜 그리도 어려운지..
주기적으로 계속 스스로에게 각인시켜 나가야 느슨해 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은..
흠.. 그런데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는 '위선자'라고 해야 하나? 다른 무엇으로 불릴 만한 것이 없을지.. 요즘은 '종교인'이라고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쩝...


좋은 생각과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천을 해야지 안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는거겠죠!!
실천하고 놀력해야 대가가 있는 것 같아요
늘 느끼긴 하지만 정말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되새겨야 할 것 같아요. ^^
글 감사합니다.. zzip님.